공익광고를 보며 문득 들었던 묘한 피로감에 대하여

공익광고를 보며 문득 들었던 묘한 피로감에 대하여

어제 퇴근길 지하철을 기다리다가 플랫폼 벽면에 붙은 큼지막한 공익광고를 하나 봤다. 꽤 익숙한 카피였는데, 내용은 대충 가족의 소중함을 되새기자는 류의 문구였다. 평소라면 그냥 지나쳤을 텐데, 왠지 그날따라 그 광고가 눈에 박히는 느낌이 들었다. 사실 요즘 업무 때문에 브랜딩 업체랑 몇 번 미팅을 했더니, 머릿속이 온통 광고의 구조나 의도 같은 것들로 가득 차 있어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에는 동네 식당에서 밥을 먹다가 테이블마다 놓인 주문기 화면에서 시정 안내가 나오는 걸 보고 좀 놀랐던 기억이 난다. 메뉴잇인가 뭔가 하는 업체가 안산시랑 협약해서 그런 시스템을 도입했다던데, 생각해보면 이런 식의 생활밀착형 홍보가 요즘 대세인가 싶기도 하다.

너무 당연한 말을 할 때 느껴지는 불편함

공익광고라는 게 결국 누구나 다 아는 당연한 소리를 하는 거 아닌가. 그런데 막상 그걸 기획하고 결과물로 뽑아내는 과정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할 것 같다. 며칠 전 미팅한 곳은 마케팅 에이전시였는데, 그 사람들은 어떻게든 메시지를 압축하려고 애쓰더라. 공익광고도 마찬가지일 거다. 짧은 문구 안에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만한 가치를 담으려면 얼마나 많은 회의를 거쳐야 할까. 예전에 봤던 학부모 대상 광고가 생각난다. ‘부모는 꿈을 꾸라 하고 학부모는 꿈 꿀 시간을 주지 않는다’는 식의 메시지 말이다. 그건 정말 뼈를 때리는 문구긴 했는데, 그 광고를 기획한 사람들도 정말 그렇게 생각해서 만들었을까, 아니면 그냥 사람들의 공감을 얻어내기 위해 가장 효율적인 문장을 고른 것뿐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사진작가와 조명, 그리고 보여지는 모습들

한번은 지인이 하는 프로젝트 때문에 음식 사진 촬영장에 따라간 적이 있다. 그때 느꼈던 건데,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이미지들이 사실은 철저하게 통제된 환경의 결과물이라는 점이다. 셔터 한 번 누르기 위해 조명을 수십 번 옮기고, 음식의 질감을 살리려고 기름을 바르고, 그런 세세한 과정들을 보면서 기분이 좀 묘했다. 공익광고 속 인물들도 마찬가지일 거다. 환하게 웃고 있는 그 얼굴 뒤에는 수많은 스태프와 몇 시간 동안의 대기 시간이 있었겠지. 손기정 선생님이 과거에 촬영했던 공익광고 사진을 본 적 있는데, 그때는 지금처럼 화려한 기술이 없었어도 그 무게감이 남달랐다. 요즘 나오는 매끈한 광고들이 때로는 너무 인위적으로 느껴지는 이유가 아마 그런 ‘사람 냄새’의 부재 때문은 아닐까 싶다.

수의계약과 예산 사이에서 고민하던 날들

회사에서 작은 프로젝트를 하나 진행하면서 느낀 건데, 공공기관이나 지자체와 연관된 마케팅은 절차가 정말 까다롭다. 수의계약 한번 하려 해도 증빙해야 할 서류가 산더미다. 예산은 한정되어 있는데 기대치는 높으니, 기획하는 입장에선 쥐어짜는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다. 어쩌면 내가 요즘 공익광고를 보면서 피로감을 느끼는 이유가, 그 광고들의 뒷면에서 일하는 누군가의 고충을 무의식적으로 상상하게 돼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누군가에게는 희망의 메시지일 광고가, 누군가에게는 예산과 효율의 결과물로만 읽히는 이 지점이 참 묘하게 서글프다.

그럼에도 계속되는 메시지들의 홍수

이제는 지하철을 타도, 밥을 먹으러 가도 어디서든 무언가 나에게 말을 건다. 자살 예방을 위한 109 안내부터 지자체의 안전 정보까지, 우리는 실시간으로 메시지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 이게 과연 효과가 있을까? 사실 나는 잘 모르겠다. 누군가 ‘자살’이라는 단어를 검색했을 때 알고리즘이 자동으로 관련 공익광고를 띄워주는 기술적인 성취는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차가운 화면이 사람의 마음을 실제로 돌릴 수 있을지는 여전히 물음표다. 어쩌면 우리는 너무 많은 메시지 속에서 점점 무뎌지고 있는 건 아닐까. 어제 본 그 광고도 아마 내일쯤이면 까맣게 잊힐 것 같다.

댓글 2
  • 플랫폼에 붙은 공익광고처럼, 매 순간 쏟아지는 정보의 양 때문에 오히려 정신적인 피로감이 더 크게 느껴질 때도 있네요.

  • 정말 공익광고 기획의 어려움이 잘 드러나는 글 같아요. 특히 학부모 광고 예시처럼, 전달하려는 메시지의 의도가 제대로 와닿지 않아서 오히려 답답한 느낌을 받기도 하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