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트캠프 등록을 결심했던 그날의 오만함
마케팅 일을 3년 정도 하다 보니 매일 아침 인스타그램 광고 효율을 확인하는 게 일상이 됐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숫자들이 진짜 의미하는 게 뭘까?’ 단순히 클릭 몇 번 더 나오는 거 말고, 데이터를 더 깊게 파보고 싶다는 이상한 욕심이 생겼다. 그래서 퇴근길에 덜컥 데이터 분석 부트캠프를 결제했다. 가격은 대략 150만 원 정도였나, 적지 않은 금액이었는데 그때는 그게 커리어의 전환점이 될 거라 믿었다. 요즘 마케팅 시장이 다 데이터 기반이라는데, SQL 정도는 다룰 줄 알아야 대행사든 인하우스든 살아남지 않겠나 싶었다. 사실 마케팅학과 대학 시절에 배운 건 거의 다 까먹은 상태였고, 파이썬이나 SQL은 들어만 봤지 실제로 써본 적도 없으면서 말이다. 등록할 때만 해도 내가 스스로 데이터를 뽑아서 인사이트를 도출하고, 연봉도 훌쩍 높일 수 있을 줄 알았다. 정말 순진했던 것 같다.
쏟아지는 영어 에러 메시지와 끝없는 삽질
문제는 수업이 시작되고 일주일 뒤부터 터졌다. 첫 수업은 호기롭게 시작했다. 강사님은 SQL 코드를 몇 줄 입력하더니 예쁜 그래프를 뚝딱 만들어냈다. ‘아, 이거 별거 아니네’ 싶었다. 그런데 막상 과제를 하려고 컴퓨터 앞에 앉으니 화면 속에는 온통 이해할 수 없는 에러 메시지만 가득했다. 구글링을 해도 다 영어로 된 Stack Overflow 페이지뿐이었다. 한 줄짜리 쿼리를 짜는 데 3시간을 썼다. 밥 먹는 시간도 아까워 배달 앱으로 샌드위치를 시켰는데, 샌드위치가 도착했을 때도 내 코드는 여전히 빨간색 에러를 내뿜고 있었다. 마케팅할 때는 감으로 대충 때려 맞추기도 하고, 인터넷 기사나 트렌드 분석 리포트 보면서 ‘요즘은 이게 대세네’ 하면 그만이었는데, 이건 정답이 정해져 있으니 더 답답했다. 오차가 생기면 왜 틀렸는지 찾아내는 과정이 너무 고통스러웠다.
광고 대행사 생활과 병행하는 지옥 같은 스케줄
회사에서는 광고 예산 집행하느라 정신없는데, 집에 오면 데이터 분석 과제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네이버 플레이스 마케팅 돌려놓고 결과 리포트 쓰다가 SQL 문제를 푸는데, 솔직히 현타가 세게 왔다. 내가 이걸 왜 하고 있나 싶었다. 인스타 팔로워 구매 사이트들이 판을 치고, 트위터에서 한국인 유저 유입 옵션 고르는 게 마케팅인 시대에, 나는 왜 굳이 캄캄한 검은 화면에 코드를 치고 있는 건지. 밤 11시가 넘어서 멍하니 모니터를 보고 있으면 이게 대체 누굴 위한 노력이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팀장님은 옆에서 ‘요즘 인스타 광고비 효율 왜 이래?’라고 묻는데, 머릿속으로는 JOIN 문을 어떻게 써야 데이터가 겹치지 않고 잘 나올지 고민하고 있으니 집중이 될 리가 없었다. 공부가 업무를 돕는 게 아니라 방해하는 느낌이었다.
결과물은 없고 의문만 남은 과정의 끝
부트캠프가 끝나갈 무렵, 최종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대단한 걸 만들고 싶었는데 결국 만든 건 평범한 매출 데이터 시각화였다. 사실 엑셀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다들 거창한 분석 모델을 만들었다고 자랑하는데, 나는 그저 데이터가 무사히 추출된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수업료를 내고 얻은 게 지식인지, 아니면 내가 데이터 분석 쪽이랑은 영 안 맞는다는 깨달음인지 잘 모르겠다. 주변 친구들은 이제 SQL 할 줄 아냐고 묻는데, 차마 대답을 못 했다. 그냥 ‘어, 기초적인 건 좀 알지’ 하고 얼버무렸다. 마케팅 공부를 좀 더 깊게 하면 길이 보일 줄 알았는데, 막상 공부하고 나니 길은 더 안개 속으로 들어간 것 같다.
지금 당장 필요한 건 데이터보다 감각일지도
지금도 인스타그램을 켜면 광고들이 쏟아진다. 어떤 건 진짜 잘 만들었다 싶고, 어떤 건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카피를 썼나 싶다. 데이터 분석 기술을 익히고 나니 예전에는 그냥 지나쳤던 수치들이 조금 더 선명하게 보이기는 한다. 예를 들면, 단순히 ‘팔로워가 많네’가 아니라 ‘저 계정은 트래픽 소스를 어디서 끌어오고 있을까?’ 같은 생각을 하게 된 것 정도. 하지만 이게 내 연봉을 올려주거나 내 기획을 더 설득력 있게 만들지는 않는 것 같다. 결국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건 깔끔한 데이터가 아니라, 사람들의 행동 패턴을 읽는 그 묘한 감각이 아닐까 싶다. 어쩌면 나는 데이터 분석 자격증 같은 거에 매달리기보다, 요즘 사람들이 정말 어디서 시간을 보내는지 더 자세히 관찰하는 게 나았을지도 모른다.
JOIN 문 고민하는 모습이 딱 그려지네요. 데이터 분석 외적인 부분보다 본질적인 질문이 더 중요할 때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SQL 문제 풀다가 현타 진짜 와요. 제가 하는 일이 왜 필요한지 혼란스러웠거든요.
계정의 트래픽 소스 분석을 생각하게 된 게 흥미롭네요. 제가 광고 효율 확인하면서도 비슷한 느낌으로 '이 숫자들이 뭘 의미하는지' 고민했던 적이 있었거든요.